오산 차천로와 관운 - 율목정
오산 차천로와 관운 - 율목정
  • 과천시대신문
  • 승인 2021.12.02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어난 지 쉰아홉 되고 보니 /  머리털은 서리보다 새하얗다 / 문장에 의지해 늙었는데 / 부질없이 의기만 남아있구나 / 고개를 숙이매 두렵기만 하고 / 눈을 쳐듦에 창공은 아득하다 / 어찌하면 날개가 솟아나서 / 바람타고 천지사방 벗어날까/ 혼자 읊다(獨吟)

  조선 중기, 선조부터 광해 때까지 활동하던 비운의 천재 문사 오산 차천로의 묘가 과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된다. 어찌하여 그의 묘가 과천 문원동의 청계산 자락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연유를 알 수 없지만 조선은 물론, 명나라와 일본 땅에까지 문사로서의 명성이 떠르르 했던 오산이 60세의 나이로 죽기 1년 전, 40여년 가까이 문사로 나라에 봉사했지만 하급 관리를 면치 못했던 자신의 처지를 비관 하는 듯 읊조린 작품이다.

  ‘홀로 읊조리다’는 작품명에서 느껴지는 자조감과 함께 이제는 어깨 한 쪽이 처진, 촌로같은 모습의 그가 죽기 1년 전이라면, 혹, 과천의 어느 곳에서 쓴 작품이 아닐까?

  허균이 북경에 사신으로 갔는데 별을 보고 점치는 성관(星官)이 “청구(靑邱)의 분야에 있는 규성(奎星)의 빛이 흐려졌다. 한 문장가의 죽음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을 때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압록강을 건넌 뒤 오산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놀라 어쩔 줄 몰랐다는 이야기가 김득신의 <종남총지>에 수록되어 있을 만큼 당대의 문장가로 인정받았던 오산은, 그러나 불우한 인생을 살다간 천재였다.

  22세의 어린 나이에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관리의 길에 나갔지만 30대 초반 다른 이의 알성시 답안을 대작해 2년간 유배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후 뛰어난 문장력으로 선조의 사랑을 받아 큰 벌은 면하지만 그의 관운은 거기까지 였다.

  아버지 차 식과 그의 형, 아우와 함께 뛰어난 문장가로 명성을 얻지만 고려조 명문 귀족으로 조선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그의 가족배경에, 회복할 수 없는 실수까지 더해져 출세길이 막혀버린 그는 여기에 순순하지 못한 호방한 성격으로 주변에 동화되지 못한 듯 보인다.

  문장 하나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까지 했지만 변변하게 남기지 못했던 그의 작품집은 그가 죽은 뒤 180여년이 지난 정조 때에서야 비로소 나온다.

  관운(官運), 사람이 인위적으로 할 수 없고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이 관운이라는 말도 있지만 참으로 당시 상황에서는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치명적 실수까지 보태져 크게 쓰임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의 무덤이 이제 과천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됨으로 해서 다시 조명되길 바래 본다.

  아울러 곧 다가올 2022년 새로운 대통령과 지방 일꾼을 뽑는 두 번의 선거에서 관운을 입게될 선량들이 누가 될지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